한지일 나이 배우 프로필 경력 학력 활동 사업실패와 이혼
등록일
2024-11-11 15:00:53

한지일은 1947년 12월 17일 (만 77세) 황해도
연안군에서 어머니 김순애의 유복자로
태어났고, 이후 서울특별시로 이주해 정착했다.

그의 본명은 한정환이고,
본관은 청주 한씨이다.

그는 인창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의 학과는
미디어학과의 전신으로,
현재는 정치학과와 통합되어 정치학사
학위를 받았다.

한지일은 1970년 광고
모델로 데뷔하였고, 1973년 영화 《바람아
구름아》의 주연으로 영화배우로正式 데뷔했다.

초기에는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한소룡'으로 활동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1978년 영화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남우상을,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85년, 영화 《길소뜸》에 출연하면서
이장호 감독의コメント로 인해 당대 최고
스타배우 김지미와 신성일의 이름 한
글자씩을 떼어 '한지일'로 개명했다.

그는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1980년대 말부터 성인 영화 제작자로도 활동했다.

그는 진도희, 정세희 등의 에로 배우들을
발굴하고, 《젖소부인 바람났네》,
《정사수표》 등으로 1990년대 성인 비디오
시장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와
비디오 산업의 불황으로 그의 재산이 거의
전부 날아가고, 가정사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10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잃고,
이혼까지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그는 우울증을 앓게 되며,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다.

영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한지일은 '케빈 정'이라는 가명으로 재기를
꿈꾸며, 취업을 위해 1960년생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취업이 어려워 여러 번 일자리를
거절당하고, 심지어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마트에서 일하거나,
발레파킹 요원 등 다양한 잡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2017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아 한국으로 돌아온
한지일은 2019년 단편 영화 《미희》를
통해 26년 만에 영화배우로서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특별한 작품으로,
그는 주인공 진덕이라는 인물을 통해
노후와 고령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조명했다.

현재, 한지일은 식당 서빙이나 방송 출연
등으로 혼자 지내며, 틈틈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삶은 영화배우로서의
전성기와 함께, 개인적인 어려움과 극복의
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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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1 15: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