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김범수 자녀 가족 나이 프로필 경력 학력 활동
등록일
2024-07-15 11:47:01

김범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카카오
의 창업자이자 총수이다. 1966년 3월 27일 (만 59세)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으며, 전형적인 농민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다섯 형제 중 장남으로서 자라며, 부모님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지원 덕분에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우고 공부했으며, 이는 훗날 그의 성공에 큰 밑거
름이 되었다.

김범수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후, 석사
과정을 마치고 삼성데이타시스템(SDS)에 전문연
구요원으로 입사했다.

이곳에서 그는 컴퓨터 언어와 시스템 개발에 몰두하
며 유니텔 같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SDS에서의 경험은 그의 첫 번째 창업인 '미션넘버
원' PC방과 이후의 한게임 창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98년, 그는 삼성SDS를 떠나 현재 카카오 대표
인 남궁훈과 함께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한양대학교 앞에 열었다.

이 PC방은 개업 6개월 만에 큰 수익을 올렸고,
이를 발판으로 1998년 11월, 한게임을 창업하였다.
한게임은 빠르게 성장하며 2000년 네이버와 합병하여
NHN을 탄생시켰다.

NHN에서 김범수는 한게임을 일본 시장에 성공적
으로 진출시켰으며, 이를 통해 글로벌 무대에서의 입
지를 다졌다.

2007년 NHN 대표직을 사임한 김범수는 2009년
카카오를 창업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카카오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성공으로 급성장하며 대한민
국을 대표하는 IT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김범수는 카카오의 총수로서 카카오 경영쇄신
위원장,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등의 역할을 수
행하고 있으며,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 초대 총장,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 국립오페라단 이사장 등 다양
한 직책을 맡고 있다.

김범수는 사업 외에도 사회적 기여와 기부에 많은 관
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21년 더 기빙 플레지에 자
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약했으며, 이
를 위해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즉각적인 기부금 사용을 원칙으로 하여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한, 그는 코로나19, 강원도 산불, 태풍 피해 복구
등 여러 재난 상황에서도 꾸준히 기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3월 29일, 그는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을 김
성수에게 넘기고, 글로벌 사업 확장에 전념하기로 했다.

2023년 8월 1일, 국립오페라단 이사장으로 임명되
었으며, 그 외에도 청년과 사회혁신가 지원 등 다양한
소셜임팩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김범수의 경영 철학과 사회적 기여 활동은 많은 사
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김범수는 NHN에서 퇴사
하며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났다. 그는 NHN
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뒤로 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
은 채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갔다.

미국에서 그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함께 놀아주는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김범수는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
기며 삶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다.그 후, 그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음악과 책에 빠지며 시간을 보냈다.

외로움을 느낀 김범수는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1
년 동안 한국에서 휴식과 놀이를 즐기자고 설득했다.
당시 큰아이는 고등학교 1학년, 둘째는 중학교 3학년
이었지만 김범수는 자녀들이 1년 정도 학업을 쉬는 것
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족들은 함께 여행을 다니고, 당구를 치고, PC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이
기간 동안 김범수는 자녀들에게 게임을 가르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과 함께 보낸 이 3년은 그에게 있어 가장 행복
한 시간이었고, 아이폰의 출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도전의식을 불태우게 되었다.

아이폰의 출시를 보며 김범수는 PC에서 모바일로의
변화를 직감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된다
. 그는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카오톡을 개발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카카오톡은 2010년 출시되자마자 무료 메시지와 그
룹 채팅 기능을 앞세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1년
만에 1,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했다.

이는 당시 이동통신사의 문자 메시지 서비스가 글자
수 제한과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에 비해 카카오톡
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무제한으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
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은 초기에 수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김
범수는 매달 10억 원 이상의 서버 투자 비용을 감수하
며 사용자가 늘어나는 것에만 집중했다.

네이버 합병으로 얻은 투자금이 없었다면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중국의 텐
센트로부터 투자금을 받아 카카오톡의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했다.

카카오톡은 메신저 서비스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카카오 게임, 선물하기 기능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
익 모델을 구축했고, 이는 김범수의 인터넷 사업 경험
과 신념 덕분이었다.

2014년, 김범수는 다음(Daum)과의 합병을 통
해 카카오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카카오는 무
료 서비스로 시작해 게임 연동, 유료 서비스, 카카오
뱅크 등 다양한 인터넷 은행 사업으로 성과를 내면서 2
019년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김범수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성공의 비결"
이라며, 삼성SDS를 떠나 한게임을 만들고, 네이버
와 합병하고, 미국으로 떠나고, 카카오톡을 개발하는
등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성공의 이유
로 꼽았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활동
증가와 기술주의 상승세로 계열사를 확장해 나갔지만
, IT업계의 버블이 꺼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특히, 카카오톡의 데이터가 외주업체에 저장되었다
가 화재로 인해 서비스가 중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독과점의 심각성이 부각되었고, 정부와 여론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되었다.

또한,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의
주가 조작 의혹까지 더해져 카카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편, 김범수는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벨라
지오 카지노에서 도박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도박
금액이 상당하여 한국 현행법상 불법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밝
혀지지 않았다.

김범수는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IT 업계를 선도하며 카카오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시켰지만, 동시에 다양한 논란과 위기를 겪으며 복잡
한 경영 환경 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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